보은 호점산성에서 느낀 가을 햇살과 돌벽 속 고요한 역사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보은 회인면의 호점산성을 찾았습니다. 해발 400미터 남짓한 능선 위에 자리한 산성은 멀리서 보면 숲 속의 돌무늬처럼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산 입구에 들어서자 바람에 실린 솔향이 코끝에 닿았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발밑에서 부서졌습니다. 호점산성은 삼국시대 축조된 석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일부 구간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입구 표석 옆에는 ‘호점산성’이라 새겨진 비석과 탐방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어 구조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산성으로 향하는 길은 조용했고, 등산객보다 지역 주민이 산책하듯 오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고요한 역사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1. 회인면에서의 접근과 오르는 길
보은읍에서 차로 약 25분 정도 이동하면 회인면소재지를 지나 호점산 입구에 도착합니다. 도로 옆에 마련된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정표를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성벽의 흔적이 눈에 들어옵니다. 초입에는 흙길이 이어지지만 중간부터는 돌계단이 잘 놓여 있어 걷기 편했습니다. 탐방로 중간에 ‘호점산성 북문지 300m’라는 표지판이 있어 방향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 회인면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곳곳에서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가 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평일 오전이라 인적이 드물었고, 새소리만이 들려 한층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걸을 수 있었습니다.
2. 성벽의 형태와 지형적 특징
호점산성은 능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둘러쳐진 포곡식 산성입니다. 성벽의 길이는 약 1.2km에 달하며, 현재는 일부 구간만 복원되어 있습니다. 남쪽 구간에서는 성벽의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돌들이 층층이 맞물려 견고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돌은 크기와 색이 다양하지만 서로 맞물려 쌓인 구조가 단단했습니다. 북문지 부근에서는 출입구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당시 통행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정상부에 오르면 내부 평지가 넓게 펼쳐지며, 군사 주둔지로 쓰였던 흔적들이 드러납니다. 멀리 속리산 능선이 희미하게 이어지고, 바람이 성벽 사이로 스쳐가며 낮은 소리를 냈습니다. 돌과 바람이 만든 풍경이 오묘했습니다.
3. 산성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호점산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백제와의 국경 방어를 위해 축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헌에는 정확한 연대가 남아 있지 않지만, 인근의 회인산성·보은삼년산성과 함께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 내부에서는 기와 조각, 토기편, 철제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군사 생활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조선 시대에도 일시적으로 봉수망이 설치되어 지역 방어선의 일부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삼국시대 산성 축성법을 잘 보여주는 예로서, 자연지형과 인공 구조의 조화를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지역의 방패 역할을 해온 공간이었습니다.
4. 보존 상태와 탐방 환경
성벽은 일부 구간이 붕괴되었지만, 잔존 구간의 돌 쌓임은 매우 단단하게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복원된 구역은 안내 표지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고, 탐방로 주변의 잡초도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성내 평지는 잔디가 고르게 깔려 있어 앉아서 쉬기 좋았으며, 작은 쉼터와 벤치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안내문에는 ‘호점산성의 축조 방식’과 ‘출토 유물 사진’이 함께 소개되어 있어 이해를 돕습니다. 쓰레기통과 화장실은 입구에만 마련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걷다 보면 바람이 돌벽을 따라 부딪히며 내는 낮은 울림이 들려, 공간이 살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위적 시설이 많지 않아 자연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5. 인근 역사 코스와 주변 명소
호점산성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회인산성’을 함께 방문했습니다. 두 산성의 축조 양식이 비슷하면서도 돌의 배치 방식이 달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점심은 회인면 소재 ‘고당식당’에서 먹은 청국장 정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보은속리산법주사’ 방향으로 이동해 오후 일정을 이어갔습니다. 법주사까지 가는 길에는 ‘솔향공원’이 있어 잠시 산책하기 좋습니다. 역사 유적과 자연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로 하루를 채웠습니다. 특히 호점산성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회인 들판의 풍경이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6. 탐방 팁과 주의사항
호점산성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봄과 가을이 걷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고, 겨울에는 돌길이 얼어 미끄러우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성벽 주변은 일부 낙석 위험 구역이 있어 표지선 밖으로 나가지 않아야 합니다. 등산로는 왕복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중간 쉼터에서 물과 간식을 챙겨두면 좋습니다. 주말보다는 평일 오전에 방문하면 한적하게 탐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화재 보호를 위해 성벽에 기대거나 돌을 옮기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가벼운 등산화와 모자를 준비하고, 바람이 세니 겉옷을 챙기는 것도 좋습니다. 조용히 걸으며 역사의 자취를 마음으로 느끼기에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
마무리
보은 호점산성은 크지 않지만, 삼국시대의 숨결이 살아 있는 산성이었습니다. 돌 하나, 바람 한 줄기에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본 들판의 풍경은 고요하면서도 웅장했습니다. 화려한 복원 대신, 있는 그대로의 시간과 흔적이 이곳의 품격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잠시 머무는 동안 마음이 맑아지고,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봄철 신록이 짙어질 때 다시 찾아, 초록빛 성벽을 따라 걸어보고 싶습니다. 역사와 자연이 조용히 공존하는, 그런 진정한 국가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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